◆뭔가 다르다 입장하는 순간 그렇게 느꼈다
줄지어 선 형형색색의 커스텀카 완성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방에서 온갖 언어가 뒤섞인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공기 때문이었을까. 며칠째 여러 종류의 ‘카 이벤트’를 전전하던 터라서인지, 이곳에만 감도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내 감각이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먼저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지대로 올라가 행사장을 훑어봤다. 그 아래에 늘어선 차들의 장르 스펙트럼이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화려한 전구 장식으로 빈틈없이 치장한 대형 데코트라 옆으로, ‘사자에상’ 가족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장난기 가득한 밴이 시선을 잡아끈다. 구형 바이크 튜닝 문화인 ‘구샤카이’ 스타일 오토바이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그 옆에는 단정한 얼굴의 공랭식 포르쉐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묵묵히 서 있다. 내 주변에서 ‘커스텀카’라고 부르던 세계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참가자들의 열기였다. 해외 게스트도 대거 합류해 각자의 방식으로 이 밤을 즐기고 있었고, 그 모습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영상의 프로가 설계한 ‘이벤트’라는 장치
‘NoWhereToGo 2026’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이벤트의 주최는 피치스 재팬(Peaches. Japan)이다. 해가 밝자마자 1월 9~11일 도쿄오토살롱 2026이 열렸고, 올해는 그 전후로 각종 행사와 카 미트가 빽빽하게 이어졌다. 그 사이에서 NoWhereToGo는 1월 12일 시티서킷 도쿄 베이에서 막을 올리며, 일련의 자동차 축제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피치스는 애초 본사가 한국에 있는 카 컬처 기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일본 법인은 2024년 11월에 출범해 아직 역사는 짧지만, 차근차근 팬덤과 인지도를 넓혀 왔다. 피치스를 만든 멤버들의 본업은 자동차 브랜드 TV 광고 등을 다수 제작해 온 영상 프로덕션으로, 지금도 그것을 자신의 ‘라이프워크’라고 부른다. 같은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출발한 이들이기에,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이벤트를 설계할 수 있었고, 거기에 분명한 철학을 심어 넣을 수 있었다.
“우리는 영상 제작을 하면서 차를 어떻게 하면 멋지게, 또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지 배워 왔습니다. 이번 이벤트에도 그 노하우를 최대한 녹여 넣었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런 점이 다른 행사와 ‘뭔가 다르다’고 느끼게 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는 피치스 재팬의 아키라 랑보 씨다. 수많은 작품을 연출해 온 영상감독이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골수 자동차 마니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번에는 라이트 스테이징에 특히 공을 들였습니다. 예전에 운영에 관여했던 카 이벤트 ‘Underground Tokyo Meet’을 통해, 조명이 행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꼈거든요.”
“지금은 일반 참가자들도 SNS를 통해 누구나 스스로 콘텐츠를 발신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는 프로만 구축할 수 있는 촬영 환경을, 일반 관객이든 크리에이터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설계했습니다. 영화 세트를 통째로 꺼내 행사장 위에 덮어씌운 느낌에 가깝다고 할까요.”
실제로 이번 행사에서 가장 눈을 사로잡은 장치는 회장 안에 띄워 올린 360도 스테이지였다. 스테이지를 두른 트러스 구조물은 하나도 없고, 차가 그 아래로 들어가면 천장에 매단 고휘도 조명이 위에서 쏟아지듯照明을 쏴 올리는 구조다.
덕분에 어디에 서 있든,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멋진 각도’에서 차를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었다.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케 하듯, 엔트리카가 런웨이를 타고 차례로 무대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빠져나간다. 그때마다 스테이지를 여러 겹으로 둘러싼 참가자들이 각자의 타이밍에 셔터를 끊었다. 데코트라가 등장하는 순간 쏟아진 함성은, ‘푸아아아’ 하고 울려 퍼지는 화려한 에어혼을 잠시 삼켜 버릴 만큼 컸다.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무대 뒤편
이 세트가 탄생하기까지는, 무대 뒤에 작은 드라마가 있었다. 행사 몇 달 전, 애초에 사용하기로 했던 장소가 갑작스레 사용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급히 대체지를 찾아야 했다. 팀은 새 장소를 다시 알아보고, 개최일을 조정하고, 설계도 전면 수정했다. 어느 정도의 진통이 있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시티서킷 도쿄 베이라는 공간이 예상치 못한 ‘순풍’이 됐다. 애초부터 갖춰져 있던 지붕 구조를 그대로 활용해, 대규모 보강 공사 없이도 대형 조명 장비를 매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염두에 뒀던 장소보다 오히려 이상에 더 가까운 세트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전화위복에 가까운 전개였다.
정식으로 장소와 날짜가 확정된 건 12월 중순. 그때부터 초청 차량 조율, 엔트리 차량 심사, 협업 파트너와의 조정까지 모든 절차를 초고속으로 처리해야 했다. 팀원은 고작 5명. ‘정말 개최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가시지 않은 와중에, 불과 6일간 받은 엔트리 신청에 60대 정원에 140대가 넘는 지원이 몰렸다.
위기 국면마다 자연스럽게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행사는 더디지만, 그러나 분명한 속도로 형태를 갖춰 갔다고 한다.
◆‘갈 곳이 없어서’ 만든, 모일 수 있는 곳
애초에 ‘NoWhereToGo’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지금 카 컬처는 분명히 ‘갈 곳을 잃어버린’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차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모일 수 있는 곳’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뜻을 담아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 생각은 이번에 장르의 경계를 지워 버린 차량 셀렉션에도 짙게 배어 있다.
“모든 컬처는 결국 어딘가에서 서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커스텀과 지금의 커스텀을 한자리에 세워, 박물관을 거니는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면 재미있잖아요. 도쿄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트 트럭이나 빅 스쿠터를 한곳에 모아, 해외 게스트에게도 일본만의 독자적인 카 문화를 제대로 체감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자동차에 한정될 필요도 없습니다. 디자인, 음악, 무엇이든 좋아요. 보는 이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극이나 영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일본에만 존재하는 컬처와 커뮤니티에서 우리가 배운 것을, 우리 방식으로, 해외 관객까지 포함해 가까이에서 전하고 싶어요. 그것이 피치스 재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받쳐 준다
아키라 씨는 이번 이벤트의 성공을, 참가한 오너들과 각 스폰서사의 이해, 그리고 따뜻한 협조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카 컬처는 차를 소유한 오너들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합니다. 자신의 차 한 대가 행사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신 점이 무엇보다 고마웠어요. 포르쉐 재팬이 일본 카 컬처 전체를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태도에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베스트 아트 앤드 컬처’라는 상을 따로 마련해 주셨는데, 최종 수상작은 보라색 도장을 입힌, 그야말로 ‘더 일본’이라 부를 만한 아트 트럭이었습니다. 이번 행사 콘셉트 아트를 입힌 포르쉐는 현재 기사라즈 포르쉐 익스피리언스 센터에 전시돼 있습니다. 이 이벤트는 결국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완성됐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팀은 앞으로 이번 행사로 끝내지 않고, 피치스 재팬의 활동을 통해 아트·음악·패션 등 더 다양한 문화와의 융합을 꾀할 계획이다. 자동차 마니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까지 폭넓게 끌어들이며, “컬처의 허브가 되고 싶다”는 말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았다.
‘갈 곳이 없어서’ 시작한 공간이, 이제는 ‘가고 싶은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국내외 교류를 넓혀 가며 다음 세대의 문화를 발신하는 거점으로 자라날 이곳의 미래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솔직히 가슴이 뛰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