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현 와코시에 있는 혼다 기술연구소를 찾을 기회가 있었다. 혼다의 연구·개발 거점이다. 그때 발아래를 보니, 몇몇 맨홀 뚜껑에 수상쩍은 마크가 새겨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연구소 안은 촬영이 금지돼 있어 실물 사진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점은 양해를 구한다.
둥근 쇠틀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뚜껑 한가운데에는, 도쿄도(자치단체)의 ‘거북등’ 마크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연구소가 자리 잡은 곳은 사이타마현인데도 말이다.
연구소를 안내하던 직원은 “도와 현의 경계가 가까워서 그렇죠”라며 웃어넘겼다. 하수도 같은 인프라 시설은, 행정구역 경계선 그대로 관할이 갈리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지명이 ‘주오(中央)’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와코시 자체는 도쿄도와 맞닿아 있지만, 연구소가 도·현 경계 바로 옆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대 도·현 경계는 연구소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시라코가와(白子川)를 따라 나 있는데, 그 강을 굳이 횡단해가며 도쿄도 측 지하 구조물이 이곳까지 뻗어 들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다른 가능성도 떠올려 볼 수 있다. 도쿄도가 인프라를 정비할 때, 사이타마현 쪽 연구소 주변까지 한 번에 공사를 진행하면서 사업 주체가 도쿄도였기 때문에 도쿄 측 자재를 그대로 함께 사용했을 수 있다. 혹은 연구소 주변 공사를 맡은 업체가 도쿄도 발주 공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어, 그때 남은 자재를 여기서 소진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어디까지나 웃어넘길 만한 가설에 가깝다.
이 기묘한 맨홀 뚜껑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가운데에 ‘기켄(技研)’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철제 뚜껑도 있었다. 처음에는 ‘혼다의 오리지널 디자인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곧 아닐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켄(技研)’은 모회사인 ‘혼다기켄고교(本田技研工業)’의 통칭이다. 혼다 기술연구소는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자회사로, 통칭은 ‘연구소’다. 와코 연구소는 분사 이후 쭉 이어져 온 시설이라 공사 발주자가 혼다기켄고교였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표기는 ‘혼다(本田)’ 쪽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외부 방문객이 수시로 드나드는 테마파크 같은 곳도 아니라, 굳이 오리지널 디자인 맨홀 뚜껑을 따로 주문할 이유도 희박하다.
결국 ‘기켄(技研)’이라는 표기는 이 뚜껑을 만든 제조사를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문제는 혼다기켄고교 사례에서 드러나듯, ‘기켄’이라는 이름을 쓰는 회사가 일본에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어느 한 업체로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맨홀 업계 내부에서는 ‘기켄이라고 하면 ○○기켄’을 떠올리는, 업계 사람들만 아는 암묵적인 1순위 업체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일본 전국 곳곳에서 각 지자체의 개성을 담은 오리지널 디자인 맨홀 뚜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와코시 역 앞 거리에도, 이를테면 혼다의 소형차 ‘N360’을 모티프로 삼은 디자인 맨홀 뚜껑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